@ 히메
친애하는
삶, 생, 그리고
pride/기록

 

 

 

 

 

 

 

 

 

 

 

 

 

 

 

 

***

 

 

 

 

 삶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생이라는 것은 또 무엇이며,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가.

 

 

 

 청년은 생각했다. 삶은 내가 이룬 것이고, 생이란 나를 만든 것이며, 살아가는 것은....

 무상하다. 눈앞이 뿌옇고 붉다. 눈앞을 가리는 것이 네 것인지, 내 것인지.... 죽음을 앞두고 이제 와서 삶이니 생이니 하는 나부랭이에 대해 생각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후회? 그런 것은 없다. 미련? 그것도 없다. 내게는 오직 너 하나를 지키지 못한 속죄, 속박, 죄. 그래. 지키지 못한 죄 하나만이 나를 옭아맬 테니.

 死. 죽는다. 죽을 것이다. 죽는 게 나을 것이다. 몸은 버티지 못했고, 버티지 못한 몸을 더 잡아둘 정신도, 너를 잃은 순간 흩어졌다. 애초에 너를 잃은 순간부터 내게 선택지는 없었다. 흰 가면은 고대의 힘으로 오만했던 이리의 털과 이를 뽑았으며, 이리는 초라해진 순간 제 반려를 지킬 기회를 잃었다. 그렇게, 허무하게도 너를 잃었다. 

 털썩, 네게도 아직 굽히지 못했던 무릎이, 끝끝내 굽어졌다. 너를 앞에 두었지만, 너를 위하여 꿇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리 되었을 뿐. 그래, 이게 우리의 운명이라는 거겠지. 너의 결말도, 나의 결말도, 그 누구도 우리의 끝에 반항할 수 없는 신들이 정하고 만들어낸 운명. 그저 그것일 뿐.

 

 

 

 

 

 

 

 

 

 

 

 

 

 

 

 

 

***

 

 

 삶이라는 것은 

 

 

 

 

 

 

 

 "하, 또 이딴...."

 

 

 줄곧 단정히 누워있던 남자가 급히 일어나 자리를 고쳐 앉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또 몰아쉬어도 가라앉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몸뚱아리를 두고 남자는 또 올라오는 거친 말을 차마 소리 내어 뱉지 못한 채 애써 다시 삼켜냈다. 잊고 싶은 꿈이다. 더는 떠올리지 않고 싶은 기억이었다. 잊으면 안 되는 기억이었으나 차마 떠올릴 수도, 떠오른다면 외면할 수도 없는 과거의 조각이다. 그래서 그는 무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두었다. 기억나지 않으면 기억나지 않는 채로, 가끔 기억이 망령처럼 따라다니면 그 망령을 받아들였다. 기꺼이, 그리고 불만스럽게.

 

 

 인간은 왜 꿈을 꾸는가, 또 꿈을 꾸어서 좋은 것은 무엇인가.... 오래도 살다 보니 별일에 다 불만을 가지고, 별일에 의문을 가진다. 간밤의 악몽인지 길몽인지 모를 꿈이 보여준 기억 탓에 또 한 번 머리가 상념으로 가득 찼다. 운명에 수긍하고 순리를 따라 살고 그저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지만 그는 운명을 거스른 사람이 아닌가. '원래 그렇다'는 자연의 순리를 뒤틀어 생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본능적으로 행동하다가는 신을 거슬리게 해 언제 다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사고하고, 사유하며, 스스로에게 질의한다. 삶은 무엇이고, 생은 무엇이며, 결국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가. 끝내 과거의 연인을 지키지 못하고 혼자 살아남았던, 그래서야 자국의 국경은 어떻게 지킬 테냐 손가락질받았던 후작, 로렌츠 헤이워스 몬테규가 답지 않게 무릎을 세워 모아 끌어안고 얼굴을 묻었다. 어릴 적, 언제부터였는지 모를 까마득한 시간 이전부터 두통이 올 만큼 아린 생각을 떠올리면 습관적으로 하던 행동이었다.

 

 

 침대맡에 기대어 앉아 잠시간의 상념을 끝으로 잡생각을 치운 남자가 마지못해 일어섰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날이지만 왕궁의 하루는 매일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모시는 주인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일정에 차질을 빚거나 음식이 잘못되거나.... 남자는 이중 첫 번째 것은 지키는 건지, 마는 건지 싶은 사람 중 하나였다. 제삼자가 들었다면 감히고귀하신우리로운의태양께저런불경한발언을... 이라며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펄쩍 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하게 하였다. 그저 그랬다.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었다. 왕세자는 그의 말에 웃고 불경하다 한마디 하는 것을 빼면 아무렇지도 않았으니. 왕세자와 남자를 뺀 모두가 의아해했고, 또 일부는 불만을 가졌지만 그들은 그런 관계였다. 그 왕세자가 가만히 있는데, 대체 누가 더 불만을 표하겠는가? 

 

 

 정갈한 모습으로 침구를 정리하고, 마침내 침대에서 온전히 벗어난 남자가 분주히 준비를 시작했다. 시간이 또 얼마나 지났을까, 단정하게 시종의 정복을 차려입고 머리도 깔끔히 정리하여 넘긴 남자가 시종의 거처를 나섰다. 시종의 아침은 그들을 부리는 사람보다 훨씬 일찍부터 시작한다. 조간 회의를 하고, 사용인을 깨우고, 시중을 들고.... 일이 바빴다. 언제나 바빴다. 로렌은 본디 바쁘지 않게 사는 사람이고, 천문학적으로 많은 날들을 바쁘지 않게 살아왔지만, 최근 바쁘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어쩌면 꽤 즐거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그랬다. 그녀를 차츰 잊어가는 것 같았기에.

 

 

 

 

 

 

 

 

 

 

 

 

 

 

 

 

 

 

***

 

 생이라는 것은

 

 

 

 

 

 

 첫 만남이라, 하면 글쎄. 둘의 대답은 달라질 것이다. 로렌은 XXX년 X월 XX일, 밤, 정원에서. 그리고 왕세자는 XXY년 Y월 YY일, 자신의 왕세자 책봉식에서. 둘이 대답이 왜 다른가? 하면 로렌은 답하지 않을 것이고, 왕세자도 굳이 캐묻지 않을 것이다. 이를 두고 알베르가 너무 경계하지 않는 것이냐, 한다면 그건 아니다. 알베르는 로렌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정보는 알아보았고, 가능한 손에 쥐고 그에게서 캐낼 수 있는 것은 다 캐내보았다. 캐내었는데 성과가 없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치밀한 왕세자-세간에는 그저 능력이 좋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이래저래 수완이 대단히 좋은-가 캐내었음에도 왜 손에 쥔 정보가 없느냐, 한다면 그저 로렌이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알베르도 로렌의 태도로 미루어 보아 그가 어련히 말하겠거니 혹은 너무 큰 비밀은 때로 알고 싶지 않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판단은 언제나 현명했고, 로렌에 있어서도 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팽팽 잘 돌아가는 머리로 아무것도 없이, 이 칼날 같은 왕궁에서 정보 하나만을 쥐고 살아남은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둘의 첫 만남은 어땠느냐... 하면, 로렌이 기억하는 첫만남은 별 볼 일 없었다. 로렌은 그저 다른 용무로 자신의 어두운 피부색을 그림자에 감춰가며 슬쩍 왕궁에 들어왔다 창문 너머로 알베르를 보고 금세 그 자리를 떴으니까. 그러니 사실상 공식적인 첫만남은 왕세자 책봉식이 맞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렌이 그날 밤의 정원을 일부러 이야기한 이유는 또 무엇인가, 묻는다면 그는 그저 늙은이의 변덕, 혹은 숨기려 했으나 깜빡깜빡하는 기억과 갑작스런 질문에 무심코 대답해 버렸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왕세자는 그 대답을 믿을 것인가? 믿기는 개뿔. 일부러 한 것임이 분명한 것을. 능구렁이 같은 노인네라는 말이나 안 들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왕세자의 책봉식. 당시 로렌이 파에른의 외교 사절로 참여했던 행사이기에, 그날처럼 그림자에 몸을 감출 일은 없었다. 정식 외교관도 아니고, 그저 거래 하나, 책봉식 이후 이어질 외교 사절들과의 만남 일정에서 꺼내볼 무역 거래 하나, 그리고 그들의 호위. 대대로 기사 가문이었던 세카 가문이 있었지만, 왕을 호위하는 것도 아닌 일정으로 그 귀하디 귀하신 병력을 차출할 수는 없다기에 떠넘기고 떠넘겨 로렌에게까지 온 것이었다. 거래와 자신의 몸 하나 보전할 능력도 없는 이들 때문에 이 먼 길을, 마법 하나 사용하지 않고 이 머저리 같은 정치 외교관들과 함께 찾아온 길이었다. 그리고 겸사겸사 이전에 끝마치지 못했던 용무까지 마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왕세자가 지니고 있는 물건을 그리 쉽게 찾아올 수는 없겠으나, 찾아오면 찾아오는 거고, 아니면 말고 하는 생각에.

 

 

 휘스에 도착한 지도 벌써 사흘째, 책봉식 당일. 이런저런 형식적인 일정이 지나고 그나마 왕세자와 가까이 앉을 수 있게 된 만찬 자리. 그 자리에서 로렌은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갔던 알베르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왕이 될 상이라.... 저런 걸 두고 말하는 건가. 성군이고 나발이고, 여기저기서 떠들어대는 왕이 저게 아니면 뭐야. 입 밖으로 꺼내었다가는 당장 지하감옥에 갇힐 수도 있을 만한 생각을 이어가며 로렌은 눈앞의 음식에만 집중했다. 허기가 졌다. 배고픔보다는 항상 지니고 다니던 죽은 마나의 부재였지만, 이곳은 왕궁이었으므로, 그런 걸 소지했다가는 보안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두고 왔다. 자국에서는 송곳니 빠진 이리라며 조롱했고, 무시했지만 어쨌건 그의 가문도 대륙에서 적당히 이름 있는 가문이고, 귀족이었고, 이번에는 외교 사절이었으니. 

 

 

 태양을 닮았다는 찬란한 금발에 따뜻한 바다를 닮은 푸른 눈. 그야말로 오래된 동화 속의 왕자님이 튀어나온 것 같은 왕세자의 모습을 보며, 낮의 광장 사람들은 환호했고, 만찬장의 사람들은 그의 외모에 감탄하며 저 왕세자를 얼마나 등쳐먹을 수 있을지 계산을 시작했다. 엄숙했던 예식과는 달리 다소 가볍고 즐거운 분위기의 만찬에서, 귀빈들은 눈을 번득이며 제 잇속을 챙기기 바빴으니, 왕세자의 눈빛은 오히려 더 날카로워져 있었다.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고 이름과 직함을 머리에 새겨 넣으며, 자신을 기민하게 살피는 타국의 개를 관찰하는 어린 왕세자의 눈은 따뜻했으나 차가웠고, 다정하나 무정했으며, 유약했으나 또 곧았다. 알베르 크로스만은 그런 사람이었다. 과연 왕의 재목을 갖춘, 사람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 

 

 

 축제로 인해 귀빈이 많이 머물러 경비가 한층 삼엄해진 왕궁, 그것도 막 세자위에 오른 왕세자의 궁에 누군가가 단신으로 무단침입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경비에게 발각되면 바로 처형되는 것은 물론이요, 자신을 위한 축하연임에도 여러 가지 처리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어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던 서재에 침입한 왕세자가 큰 소리 한 번이라도 내면 당장 연행당할 것이 뻔한데, 그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무단침입이라니.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인가, 생각하면서도 알베르는 우선 들었다. 이 빌어먹을 눈앞의 어두운 피부색과 흑발을 가진 남자는, 어떤 의미로든 자신, 혹은 이모와 연관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리도 당연하게도, 이 빌어먹을 침입자는, 지난번처럼 자신의 다른 모습으로 거래를 청하러 온 로렌이었다. 거래를 하시죠, 저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계약을. 로렌의 본디 목적이 아니었던 다른 거래를 제안하게 된 건 정말 계획 외의 일, 그야말로 변수였다.

 

 

 남자의 말에서는 고저도, 특별한 협박의 어투도, 기대도,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 한 가지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눈에 짧게 스쳐간 일말의 절박함 뿐. 거래를 위한다면 적어도 이름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패도. 하지만 왕세자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하여 쉬이 넘어가주고 싶지 않았다. 패를 꺼내라는 뒷말은 부러 말을 흘리며 삼켜냈다. 다만 눈치 빠르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다는 것처럼 남자가 입을 열었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왕세자의 눈빛에 재미있는 것을 봤다는 이채가 서렸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알베르 크로스만 왕세자 저하. 파에른 왕국의 몬테규가 5대 가주, 로렌 헤이워스 몬테규 후작이라 합니다. 최근에는... 30대 가주, 노아 카펜터 몬테규 후작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노아, 그러니까 로렌이 말을 마친 순간 로렌 주변의 마나가 일순간 흔들렸다. 피부색을 보아 저 자 또한 다크엘프 혹은 혼혈인 것이 확실한데 어째서 자연 마나가 요동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껏 이런 광경은 어머니와 있을 때만 보아왔기에. 깨달은 순간, 마나가 다시 일렁이며 이전 만찬장에서 본 적 있는 듯한 얼굴로 바뀌었다. 아, 이 사람은 애초부터 패를 꺼내놓고 왔구나. 로렌과 알베르의 입꼬리가 우연찮게도 같은 호선을 그렸다. 거래에 있어 먼저 패를 꺼내고 숙이는 듯, 숙이지 않는 사람. 오랜만에 재미있는 사람을 보았다. 어떠십니까. 이제 거래, 할 마음이 드십니까. 고요한 방을 울리는 낮은 목소리가 들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 본 사이임에도, 오래 알고 지낸 것처럼 말 한 마디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듯 비슷한, 동류였기 때문에. 거래를 제안했다. 거래를 받았다. 거래를 승낙했다. 제안한 거래가 받아들여졌다. 후작, 당신이 한 말에 그 한 목숨 걸 수 있다면, 좋을 대로 해봐요. 

 새로운 이름으로 불려도 다시 태어날 수 없던 남자가, 좋을 대로 해보라, 그 말 한 마디에 비로소 숨을 쉬었다. 새로이 태어났다. 

 새로이 살 수 있게 되었다.

 

 

 

 

 

 

 

 

 

 

 

 

 

 

 

 

 

 

***

 

또 살아가는 것은

 

 

 

 

 

 그날의 악몽을 꾸고 나면, 늘 그날 밤 밀회의 기억을 떠올렸다. 너를 따라 죽어야만 했으나 살아남았던 기억과 새로운 주군을 받아들이며 비로소 숨을 쉬게 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죄책감은 여전하고, 홀로 살아남아 숨쉬고 있다는 거북함도 여전했으나, 적어도 숨 쉴 틈은 생겼지 않나. 죄책감도, 속죄도 떨치지 못 했지만 애초에 그것은 평생을 안고 떨칠 생각도 없었으니, 숨구멍 하나 생긴 것으로 되었다고. 그리 생각했다. 그렇게 여기며 지냈다. 그렇게 여기며 다시 이를 악 물고 살아내었다. 일종의 자기 암시다. 사랑하는 이를 지켜내지 못했던 몬테규 후작, 에서 지금은 그저 시종인 노아라고. 과거의 망령이 찾아오면 기꺼이 맞아줄 테지만, 마냥 그 속에 갇혀있지는 않을 거라고. 그래서 매번 이렇게 자기암시를 했다. 스스로에게 최면 비슷한 것을 걸어왔다. 그때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분리하는 것만으로도 제법 숨통은 트였으므로. 

 한 사람이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이 퍽이나 웃기고 비겁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람이 살아있는데, 사람이 숨을 쉬는데 어찌 숨통을 막으라 해야 하나. 삶을 살아가고 생을 이어가려는 자, 생을 이어가보고자 하는 자에게 각박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

 

삶, 생, 그리고

 

 

 

 

 "저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낮은 목소리가 문 밖에서 울린다. 말하지 않아도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있던 왕세자가 들어오라 답했다. 새로운 아침의 시작이었다. 오늘 일정은.... 중앙 귀족들과의 오찬. 그외 특이사항은 없음. 알고 있네. 이런, 저하께서 너무 유능하셔서 시종이 필요가 없게 생겼습니다만. 유능하지 않은 시종은 그닥 필요가 없는데. 이걸 어쩌나. 저하께서 시종의 일까지 빼앗아 가시니 시종이 노는 거 아니겠습니까. 자네 누가 보면 나와 친구인 줄 알겠는데. 실로 불경한 입이군. 할아버지면 모를까... 친구가 하고 싶으셨습니까, 저하? 됐네. 말을 꺼내는 게 아니었어. 실로 불경한 시종이군. 옷을 고르고, 입히는 몇 분 안 되는 그 순간에도 왕세자와 그 시종 간 많은 대화가 오갔다. 대체로 시덥잖은 대화였으나, 두 남자의 낮은 웃음이 방을 잠깐 채웠다. 함께 가겠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혼자 있을 시간도 필요하니 괜찮다며 알베르가 로렌을 떼어두고 방을 나섰다. 잠깐의 짬이 생겨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 쉴 수 있게 된 로렌이 낮고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오랜만에 기분이 좋았다. 알베르 크로스만.... 아니, 당신이 좋은 것인지. 알베르. 당신은 정말....

 

 당신은

 

 오늘도 숨쉬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오롯한 나의 구원이니

 

 

 

 

 

 

 삶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생이라는 것은 또 무엇이며,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가.

 

 삶이라는 것은 살고자 하여도 살고, 죽고자 하여도 사는 것이며, 

 생이라는 것은 그저 죽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숨을 쉬게 되는 것이고,  

 살아가는 것은 그저 살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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